※ 성경 본문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말씀 해설

    15~19절 : 야곱이 이삭에게 준비한 별미를 바친다.

    20~23절 : 이삭이 야곱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된다.

    24~29절 :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 묵상 & 기도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아 에서에게 주고자 했던 축복을 야곱에게 주게 된다. 당시 이삭이 주는 축복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중요한 일을 사람을 속여가면서까지 원래 의도와 다르게 진행시키려 했다. 그러니 리브가와 야곱이 저지른 일은 어찌 보면 범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좀 혼란스러웠다. 사람을 속이는 등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이 있었지만 어쨌든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을 속여 얻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씀을 성취하려 했던 저들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에게 절대 지기 싫어했던 야곱의 기질,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저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후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야곱도 그 축복을 온전히 받아들여 그만큼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야곱이 자신을 위한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축복을 받아들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위의 의문을 풀어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우리 인간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당연히 에서보다 야곱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더욱 어질고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 에서와 야곱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축복을 올바르게 받아들여 그 참된 의미를 삶 속에서 보여준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의미라는 건 "남을 섬기며 나를 내려놓는 자세" 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고 이삭을 속여가면서까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은 모두 이를 통해 자신이 더욱 낮아지고 남을 섬기며 그 복을 널리 전파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하나님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축복을 받아들이는 마음 속에 자신이 더욱 큰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과 장자권을 통해 그들의 권리를 챙기겠다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궁극적으로는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시며 이 세상에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말씀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 담긴 뜻을 펼쳐 나갈지는 각자의 몫에 달렸다. 말씀을 자꾸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끌어들이는 대신 그 속에 담긴 뜻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빛나는 방식으로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 참

    http://blog.daum.net/1188-10/72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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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Platanus_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