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본문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 말씀 해설

    34~40절 :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있다.

    41~46절 : 예수님께서 반대로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있다.

     


    ※ 묵상 & 기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성경을 포함한 수많은 책들에서 강조하는 덕목 중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선이자 덕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이자 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별개의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만일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 역시 인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악덕이 아닌 미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인간 개념과 그에 따른 이론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에 표현된 사상 역시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통합성과 특이성에 대한 존경이 다른 개인에 대한 존경, 사랑,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을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의 자아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건 전혀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얘기와도 같다.

    결론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타인을 사랑할 것인지를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한 태도이니 말이다. 만약 우리가 관심, 존중, 책임, 이해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면, 즉 자신의 삶의 행복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줄 안다면, 모든 이들을 똑같이 사랑할 줄도 아는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위 계명의 뜻을 삶 속에서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책] 에리히 프롬 -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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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Platanus_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