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및 묵상 / 마태복음 10:24-33
※ 성경 본문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말씀 해설
24~25절 : 선생과 제자의 올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26~31절 :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32~33절 : 사람들을 향한 행위에 따라 대가를 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 묵상 & 기도
옛날에는 나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 두려웠다. 학교에서는 힘 센 사람들이 나한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두려웠고, 집에서는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끼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내 시야에는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보였으며, 더 나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풍족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항상 부러워했다. 굳이 지위나 형편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 때는 외적으로도 상당히 주눅 든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이 남들에게는 충분히 만만하게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랬던 주제에 잘 나가는 애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외모 덕 좀 보고 인기 많았던 친구, 행사 때마다 우리 반에 먹을 것 돌리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친구 등등.. 이들을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마음만 먹으면 위에서 찍어 누르는 일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까, 일찍이 그들과 나 사이 간 격차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아서 일까, 그래서 나는 도저히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뒤에는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렸을 때의 사방에서 느낀 두려움과 열등감은 곧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 받으며 살아가기 힘들 거야"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받을 줄 몰랐고, 표현을 할 줄 몰랐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하기 어려워지고, 감정을 밖으로 토해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고, 웃고 싶을 때 웃지 않았다. 만약 웃는 모습이 보였다면 그 모습은 가식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웃어야만 남들에게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나만의 마지노선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극적인 요소나 웃긴 이야기를 통해 웃을 수는 있었어도, 정말 행복해서, 넘치는 사랑을 받거나 주게 되어서 웃게 되는 순간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남들은 다 하는 그 흔한 사랑을 포함하여 친구나 가족 간의 사랑, 전혀 모르는 사람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조차 내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두려움은 나 자신을 점점 나락으로 몰고 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생각만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보며 수많은 의견을 들어보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 나는, 모든 문제가 내 마음가짐에 있었음을 느꼈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세상 어디에 있든, 대상이 남이 되었든 내가 되든, 그 모든 두려움은 결국 나를 스스로 옭아 매는 원인이 되었다. 그 안에 갇혀 살다 보니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부정적인 자세와 태도를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이러한 시선으로 인해 점점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고 나 자신만 생각하게 되는 자세가 습관화 되어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자세와 두려움을 버리니 비로소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세상과 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니 나에게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관심을 염두에 두면서도 지나치게 그 쪽으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사람들 간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우열을 가리지 않고 내 삶의 모양을 다듬으며 속도와 방향을 점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었고, 긍정적인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을 없애니 확신이 들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 확신은 내가 내 멋대로 모든 일을 주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생각한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이 하늘의 뜻과 같든 다르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의 확신이다. 확신을 가지게 되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이 진심으로 와 닿았던 것 같다. 세상의 폭풍 같은 갈등과 다양한 생각들 속에서 두려움 없이 내 중심만 잘 잡아도 그 폭풍 속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결국 하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은 오로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 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대신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에게 주시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대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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